Durationl Instant (지속적 순간) / Lydia Gallery / 23. May. 2018 - 16. Jun. 2018
 
 
 
 
 
 

시간을 들여 이룬, 시(詩)적인 ‘시간’

박진희 개인전, 5/23-6/16 리디아 갤러리

오래된 집에는 그만큼 긴 시간의 흔적이 남는다. 아이의 키가 자란 증거가 기둥이나 벽에 빼곡히 새겨져 있고, 닳아빠진 문손잡이는 군데군데 벗겨진 흔적 투성이다. 서랍 속에는 친구와 오랜 시간 주고받은 편지 뭉치나 유년기가 고스란히 담긴 일기장들이 묵직한 질량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켜켜이 쌓아간 기록이다. 이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손에 쥐어볼 때, 비로소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을 느낀다. 이뿐만이 아니다. 슬며시 다가와 점점 짙어지는 계절의 변화에서도, 째깍째깍 돌아가다 마침내 울리는 타이머 소리에서도, 훌쩍 넘어간 책장의 두께에서도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확인한다. 시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사실 시간은 가끔은 눈에 보이고 때로는 손에 잡힌다.
그렇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유히 흐르는 것이 또 시간이기에, 시간을 어딘가에 가두고 잡아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달력이나 시계 같은 것은 어쩌면 시간을 눈에 보이는 곳에 고정해두려는 인간의 욕심어린 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조차 시간을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한다. 달력의 날짜와 시계의 바늘로 구분해 나눈 시간에는 언제나 헤아리지 못한 빈틈이 존재한다. 손으로 쥐려고 애쓸수록 반대로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것이 시간이다. 이렇게 시간은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면서도, 애타는 우리를 못 본 체하며 자신의 방향을 따라 흐르는 태연자약한 존재다.

시간을 목격하고 파헤치고 증언하는 자
박진희 작가는 꾸준히 시간을 다뤄왔다. 빗방울과 이슬을 소재로 한 설치 작업으로 시작해, 나무껍질에 새겨진 성장의 흔적과 비행운이 그리는 움직임, 블라인드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빛의 변화 등 일상적 모습에 새겨진 시간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사진 작업,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을 담은 영상 작업이나, 시간의 물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시계와 저울 등 소재나 매체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주제는 언제나 한 줄기를 그리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작품으로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이를 ‘시간을 재현하는 작업’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재현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어쩐지 석연치 못하다.
글을 쓰려면 대상의 다양한 면을 뜯어보아야 한다. 여러 각도에서 다시보고,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기도 한다. 글이 아니라, 작업을 하는 작가도 마찬가지일 테다. 박진희 의 작업에는 시간이라는 것을 여러모로 뜯어본 기색이 엿보인다. 그는 새로운 주제의 작업을 시작하기 전 작가노트를 먼저 정리한다고 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확인하며 나아가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꼼꼼히 기록하여 표면뿐 아니라 모순과 부조리마저 포함한, 본질에 가까운 모습을 드러내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박진희 작가는 시간을 재현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목격하고 파헤치고 증언하는 자에 가깝다.
그의 개인전 <지속적 순간> (2018.5.23.-6.16. 리디아 갤러리)은 최근 작업을 한데 모아 정리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언뜻 고요해 보이는 전시장은 사방에서 흐르는 시간의 움직임과 소리로 매우 분주한 기운이 돈다. 이곳에는 시간의 다양한 면모가 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 ‘지속적 순간’
우리는 사물이나 상황의 순차적인 변화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그것을 시간의 흐름이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인지체계에 의한 것일 뿐, 사실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우리의 머리가 인지한 순간 외에 미처 보지 못한 곳에서도, 보았지만 인식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장면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변한다.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그 뒤를 잇는 비행운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작가는 그 순간을 기다려 천천히 촬영한 끝에 비행운의 흔적을 붙잡아 둔다. 각자의 방향과 길이를 가진 비행운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채 그 자리에 남는다. (지속적 순간, 2014 시리즈) 한편 거리를 거닐며 보았다고 여기는 풍경은 하나의 이미지지만, 우리가 실제로 본 장면은 걸음마다, 순간마다 인지한 장면들의 총합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바로 이것을 화면 위에 펼쳐 놓는다. 6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15분 동안 느리게 움직이며 촬영한 것이다. 자세히 보면 똑같은 창문이나 가로등, 인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15분 6미터, 2015) 그러니까 우리가 ‘순간’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 그 모든 장면이 이어진 전혀 다른 시간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지속적 순간’이다.
마치 시계나 달력으로 시간을 분절하고 구획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진짜 시간은 인간의 알량한 규칙이나 체계에 구속되지 않고 인식의 틈새를 유유히 흘러간다. 전시장 한 쪽에 뒷면을 보인 채 걸려 있는 시계가 그러한 점을 보여준다. (시계의 뒷면은 없다. 시간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2016)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기에는 부족한 물건이다. 시계바늘보다는 오히려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시계태엽의 운동이 시간의 본질에 가까울지 모른다.

전시장에 펼쳐 놓은 ‘시간적 자질’
이처럼 시간의 본질을 확인하는 데에 기존의 잣대는 무의미하다. 시간은 우리가 사는 세계 어디에나 등장해서 사물과 사람과 상황을 슬쩍 스치고 지나간다. 순간적으로 남은 아주 작은 흔적이 쌓이면 자연스레 눈에 띄는 변화를 이룬다. 길이나 무게, 넓이 등 어떤 모습으로든 측정할 수 있는 시간의 존재다. 작가는 이것을 ‘시간이 될 수 있는 조건’, 즉 ‘시간적 자질’이라고 부른다.
미래의 방향으로만, 그러나 예측할 수 없이 흐르는 시간을 비정형의 나뭇가지로 표현한 <시간의 화살> 시리즈는 시간의 방향성을 드러낸다. 또 시계바늘이 달려 있는 저울 위에는 작가가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공부하며 작성한 텍스트들이 묵직하게 쌓여 있는데, 이것은 시간의 무게다. (Untitled, 2013-2018) 또한 우리의 도시처럼 무의미하게 구획된 공간 속에서 다른 조건과 전혀 조응하지 않고 제 갈 길로 흘러가는 것 역시 시간의 자질 중 하나다. 수직추로 구획된 빈 공간에서 시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타이머가 돌아가는 미세한 소리뿐이다. 우리는 시간이 거기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붙잡을 수는 없다.(등방성 , 2018)
한편, 어떤 시간적 자질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인내를 쌓으며 관찰해야 한다. 일주일 동안 창문의 블라인드를 통해 들어오는 빛과 색의 변화를 마치 지층처럼 표현한 <A Week, 2015>와 시지푸스의 형벌처럼 매일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는 나무 그림자를 담은 <시지푸스의 추, 2015>에서, 작가는 시간의 깊이와 두께, 직진성과 순환성을 확인했다. 그는 이번 전시의 <증기추상>시리즈에서도 오랜 시간 촬영해서 모은 비행운의 흔적들을 얇은 평면 위에 넓게 펼쳐 놓았다. 촬영한 시간대에 따라 맑고 흐리거나 어두운 푸른빛, 또는 붉은 노을빛을 각각의 배경으로 가진 비행운들은 목적지의 구분 없이 한 방향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 사진이 아니라 마치 회화처럼 보이는 선의 중첩은 작가가 인내한 시간만큼의 두께와 깊이를 가진다.
박진희 작가는 시간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조건들을 가시화하기 위해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데, 결국 한 방향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인식의 틈을 예민하고 명확하게 찌르는 것, 깊게 생각하고 공들여 만든 작품으로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반복하여 끝내 관객의 마음에 가 닿는 것. 어쩌면 이것이 작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관객 앞에서 시간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한 그의 다양한 시도가 반가운 이유다.

한 방향으로 축적되어온 작가의 시간
영화 <보이후드, 2016>는 6살 소년 메이슨이 18살이 되기까지 12년의 세월을 12개의 시퀀스로 구성한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소년의 유년기를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배우와 스탭들이 1년 마다 만나서 촬영을 거듭한 끝에, 무려 12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12개의 순간을 골라 보여주지만, 소년의 삶은 화면의 프레임 밖에서도 이어진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일종의 ‘지속적 순간’, 혹은 ‘지속적 인생’이다.
소년이 자라나며 특별한 사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감독은 12개의 시퀀스를 완급조절 없이 같은 비중으로 표현한다.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작은 단위의 시간과 일상적 사건이 연속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어떤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잊힐 정도로 사소하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과 잊힌 것을 모두 잇고 나면 한 줄기의 깊고 짙은 선이 된다. 한 인간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그것이 어떤 누구일지라도 대체로 경이로운 감정이 솟아난다. 사소한 시간의 축적은 이렇게 대단하다. 12년의 시간이 묵직하게 쌓인 뒤, 작은 소년은 훌쩍 자라 어른이 되었다. 이 영화가 인생의 경이를 관객에게 선사하는 지점이다.
마찬가지로, 박진희 작가에 의해 나란히 놓인 비행운이나 겹겹이 쌓인 블라인드의 그림자들은 화면에서 모두 같은 비중을 배당받는다. 작가는 이를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비행기가 한 번 날아가는 일이나, 해가 뜨고 저물고, 다시 뜨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인내와 애정으로 기록한 시간의 모습은 충실하게 아름답다. 그의 작품에 담긴 개념이 철학적이고 때론 과학적이지만, 표면에는 시적인 감정이 흐르는 이유다. 시간이 축적되고 마침내 인생이 윤곽을 드러내듯이, 박진희의 작업들도 돌아보니 비행운과 같은 흔적이 보인다. 그의 시간은 시지푸스의 돌처럼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 축적되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의 시간을 온전히 들인 ‘시간’이 중첩되면 언젠가 한 편의 시가 완성되지 않을까. 이 전시는 그 첫 구절이다.

김지연 bloom_i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