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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otrope_Installation_Level+Ruler+Square+Kichen Timer+Plumb Bob+Laser Level+Tripod_2018

거침없이 흐르는 존재, ‘시간’

거침없이 흐르는 존재, ‘시간’

재깍재깍, 지금 이 순간에도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우리는 시침과 분침이 지나간 눈금의 수만큼 ‘시간이 흘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본 것은 인간이 임의로 나눈 간격일 뿐, ‘시간’을 본 것은 아니다. 그림자의 움직임, 나무의 나이테, 비행운의 길이 등 다양한 조건과 흔적에서 시간의 존재를 느낄 수 있지만, 어떤 것도 ‘시간’ 그 자체는 아니다. ‘시간’이 도대체 누구냐고 묻는다면, 제 갈 길로 그저 흘러가는 존재라고 밖에 답할 수 없다. 대상을 관찰하는 방향이 바뀌어도 성질이 변하지 않는 것을 ‘등방성(Isotropy)’이라고 한다.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 ‘시간’을 관찰해도, 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흐른다는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를 채운 박진희 작가의 <등방성>은 그런 시간의 본질을 다룬다. 이는 그가 계속 이야기해 온 ‘시간의 자질’ 중 하나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드러낼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 즉 ‘시간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시간의 자질’이라 부른다. 수직추와 수평계로 재고 나눈 전시장은 재깍재깍 돌아가는 키친 타이머 소리로 가득하다. 인간이 구획한 도시와 건물, 그 무의미한 공간을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시간의 목소리다. 한 시간마다 울리는 알람으로 ‘시간의 순환성’을 가끔 확인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시간을 고정시킬 수 없다. 불안한 인간은 시간을 가시화하고 고정시키기 위해 시계의 눈금이나 시간표의 칸을 나누며 애쓰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그 시간을 채우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뿐이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의 통제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등방성>은 시간을 가시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가시화해서 보여주는 역설적인 작품이다. 이 역설은 결국 어떻게 쪼개고 가르고 붙여도 달라지지 않은 채, 제 알아서 흐르는 ‘시간’의 거침없는 성격을 드러낸다. 작가가 말하는 시간의 자질, ‘등방성’이다. 김지연 bloom_ing@naver.com

Isotrope_Installation_Level+Ruler+Square+Kichen Timer+Weight+Laser Pointer_2018
 
 

Untitled_Installation_Scale+Clock Movement+Thesis_2013-2016

 


 

 

 

Untitled_25x23x12Cm_Chime Clock_2016

 

I must, willy-nilly, wait until the bell tolls.

It takes time for sugar to be melted in water.  It is an unreducible waiting time as waiting for a bus at a station or waiting on food in a restaurant.  For some, waiting could have a disagreeable nuance as it suggests boredom.  Notwithstanding, however, this time of wait connotes on the regular interval of time that, if I wait, the time will eventually come.  In order to hear the time signal told by a clock having been removed of its minute and hour hand, I must wait—whether I like it or not—which is the most fundamental element of time.